2022.08.14 (Sun) 18:16      
 
홈 > 칼럼/오피니언 > 사설

TOTAL ARTICLE : 81, TOTAL PAGE : 1 / 5
[452] 말의 겸양(謙讓)이 지나치다
 용인춘추  | 2013·11·05 02:49 | HIT : 2,005 | VOTE : 389

지금 창밖에 비가 오십니다.”

비오는 날 가끔 라디오에서 들리는 말이다. 때 맞춰 오는 급시우(及時雨)라면 비님이라고 해도 무방할 테다. 오랜 가뭄이나 무더위에 한 줄기 소나기라도 내릴 때 이런 감성적인 멘트라면 최상급의 감각이다. 화사하게 비치는 해님이라고 하는데 반가운 비님이라고 못할까?

수고하셨습니다!”

이 말은 일을 시킨 사람이 일을 마친 후 일꾼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수업을 마친 후 학생들은 대다수가 이렇게 인사한다. 수업은 교수가 학생들한테 공부를 시키는 일이다.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교수가 수고롭기는 하겠지만 학생들한테 들을 말은 아니다. 공부를 시키는 교수보다 머리를 싸매고 직접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훨씬 힘들 것이다. 이 말은 교수가 가르치는 공부를 하느라 힘들었을 학생들에게 수고했다고 하는 말이어야 맞지 않을까? 아마도 열강에 미안하고 고마워서 하는 말일 게다. 그렇다면 감사합니다!’ 정도만 해도 충분할 텐데.

“OO 선배님께서 OO라고 하셨는데요.”

이 말은 대학생이 교수한테 하는 말이다. 순진한 학생이 하늘(?)같은 선배를 일러 어떻게 ‘OO 선배가 OO라는데요.’라고 하겠는가? 눈살을 찌푸려도 눈치를 못 차리고, 설명을 해줘도 이해를 못하고, 다음에 또 반복한다. 입에 달린 말이 어디 쉽게 고쳐지는가? 자기들끼리는 대수롭지 않게 쓰던 말을 대화 상대가 교수니까 더 확실하게 존대어를 쓰는 것 같다. 대화 상대보다 낮은 사람을 존대하지 않는 압존법(壓尊法)이 있다. 현실상 직장이나 군대 등 특수한 상황에서는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일상에서는 엄연히 존재하고 지켜야할 에티켓이다.

아범 좀 바꿔줘!”

애기 아빠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시부모의 전화를 받은 며느리가 하는 말이라면 아연실색할 일이다. 그러나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애비 지금 잡니다.’가 맞는 대응이다. 남편의 친구한테서 온 전화라도 같은 대답이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런 대응에 예의 없다고 하지 않을까 우려할 필요 없다. 익숙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고려하여 대답할 일이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한다. 일상적인 말에서도 예의와 불손이 쉽게 드러난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특히 말조심을 하게 되는데, 말실수가 걱정되는지 격식에 맞지 않는 존대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존대어를 적절히 쓰는 것은 나무랄 것 없지만 지나친 겸양이 오히려 불손을 초래하게 된다. 존대어는 말하는 주체와 대상에 맞게 구사해야 마땅하다.

“OO 하라는 회장님 말씀이 계셨습니다.”

회의 때 들을 수 있는 말로 예의와 존대가 한껏 묻어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투는 겸양이 지나쳐서 대상과 주체가 모호해지므로 귀에 거슬리게 마련이다. ‘계시다는 존대어는 사람이 주어일 경우에만 쓸 수 있는 말이다.

저희 학교에서는 올해부터 OO를 시행합니다.”

우리라는 말은 현재 복수(複數)의 인원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단수(單數)의 더 높은 대상에게 높여 말할 때는 우리를 낮추어 저희라고 하는 겸양어로 쓰는 것이다. 절대 혼자서 여러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를 낮추어 라고 하던 버릇 때문에 그냥 저희라고 쓰는 것 같다.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안에서 저희 학과’, ‘저희 학교라고 하고, 심지어 저희 나라라는 말까지 너무나 쉽게 저희를 남발하고 있다. 몇 달 전 작고한 전설적인 라디오 DJ 이종환씨는 방송 중 전화통화에서 청취자가 저희 나라라고 지칭하면 매번 우리나라라고 지적해 주었다. 한두 번도 아닌데 어쩌면 그렇게도 쉽게 자주 쓰는지 모르겠다. 장삼이사야 그렇다고 쳐도 교수들까지 덩달아 저희 나라라고 연발해서야 되겠는가?

가장이 집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꼭 저희 집이라고 할 필요 없이 그냥 우리집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다.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서 국가를 지칭할 때도 우리나라라고 해야 한다. 학교의 대표로서 이사장이나 총장이 다른 높은 분들에게도 당연히 우리학교라고 말해야 한다. 혹은 구성원의 누구라도. 하물며 학교 안에서 우리끼리 저희 학교라고 하면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내가 아시는 분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교수님! 정리는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저희는 현재 이 공간에 있는 복수의 대표가 전체를 아울러 겸양어로 쓰는 말이다.

  
81   [462] 세월호 참사가 일깨워 준 페어플레이 정신  용인춘추 14·06·02 3820 638
80   [461]서있는 자리마다 주인이 되라  용인춘추 14·05·12 3258 565
79   [459]‘건강한 육체’와 ‘창의적 사고’는 용인대학교의 경쟁력  용인춘추 14·04·12 3717 577
78   [458] 제2의 대부여 용인대 회갑년을 위하여  용인춘추 14·03·28 3711 539
77   [457] 창의적 지성인 되기  용인춘추 14·03·17 3671 623
76   [456] 학생은 진보하고 선생은 보수하고  용인춘추 13·12·12 4494 1184
75   [455] 대학 학생회와 선거: 소통이 문제다  용인춘추 13·11·24 2184 423
74   [454] 취업, 자신 있게 대처하라.  용인춘추 13·11·10 1966 423
73   [453] 대학 생활은 웰빙(Well-being)의 토대를 만드는 기간  용인춘추 13·11·05 1966 423
  [452] 말의 겸양(謙讓)이 지나치다  용인춘추 13·11·05 2005 389
71   [451] 약속은 지켜야 한다  용인춘추 13·11·05 1981 404
70   [450] 공존과 공감의 대학을 기대한다  용인춘추 13·11·05 1659 383
69   [449] 방학, 네 가지를 실천하자  용인춘추 13·11·05 2099 400
68   [448] 믿음직한 말과 대학언론  용인춘추 13·11·02 1603 450
67   [447] 용인대학교 건학이념, 인간교육을 생각한다  용인춘추 13·10·31 1997 491
66   [446] 청 춘  용인춘추 13·09·13 1945 527
65   [445] 경영과 교육의 상생  용인춘추 13·04·30 2094 444
64   [444] 반복되는 생활에서 별격을 꾀하자  용인춘추 13·03·31 2230 467
63   [443] 대학생과 사회정의  용인춘추 13·03·19 2262 538
62   [442] 학우들이여, 일어나라  용인춘추 13·01·21 2241 468
1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