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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 믿음직한 말과 대학언론
 용인춘추  | 2013·11·02 02:26 | HIT : 1,603 | VOTE : 450

우리는 지금 말과 글(말이 글보다 앞서므로 말로 통칭함)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넘쳐나는 미디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을 풀어내어 사람들의 눈과 귀와 몸을 파고든다. 특히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말을 생산하는 시대가 되었다.

실로 말의 범람시대라 할만하다. 누구나 말을 할 수 있어서 말이 많아진 세상은 말하는 사람 자신은 즐거울지 모르지만 그 말을 듣고 살아야만 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히기도 한다.

인간만이 말을 하며, 말로 상대를 설득하고 상대를 넘어 가족과 국가와 온 세상을 설득하기도 한다. 말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고 인류문명을 창조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어떤 정치학자는 정치는 말의 놀음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말은 언어와 문자의 통칭이다.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대상의 설득이란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둘러싸고 무수한 일이 벌어진다. 세상은 이른바 말싸움의 현장이다. 말을 통해 상대를 지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수한 설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누가 말을 생산하는 주체냐에 따라 설전의 승부가 갈린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시대란 돈이 많은 사람의 말이 통하는 시대라는 얘기다. 왕의 말씀이 중요한 시절에는 언관이란 제도를 두어 말을 관리하기도 했다. 근대에는 신문과 방송으로 대표되는 말의 생산기관이 등장하여 권력을 행사해왔다. 정보화시대인 지금은 SNS 등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기왕에 말이 문명의 동력이라면 말이 많아진 것은 문명이 더 큰 추진력을 얻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에 따른 문제점도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말은 뱉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임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신뢰가 핵심이다. 전통시대 언관들은 말의 책임성과 신뢰성을 따지는 사람들이었으며, 말의 전달자이자 생산자로서 신문이든 방송이든 처음에는 말의 신뢰를 강조하며 출발하였다. 1609년 독일에서 주간으로 발행된 첫 신문이나 조선시대인 1883년 열흘마다 발행되었던 <한성순보>도 그랬으며, 1888년 헤르츠가 라디오전파를 발명하고 1936년 영국방송협회가 정식으로 텔레비전 방송을 개시했을 때나 1956년부터 격일로 하루 2시간씩 내보낸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도 보도를 내보내며 말이 지닌 신뢰를 중시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말을 생산하는 사람들만 천지에 가득하고 말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따라서 신뢰성은 크게 흔들리며 책임을 따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상업언론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 19세기 초 미국에서 시작된 상업신문은 대중성을 확보하였고 우리나라의 경우 1959년 부산문화방송이 최초의 민간상업방송을 시작한 이래 큰 인기를 끌며 오늘에 이르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내면에서 우러나온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문의 말을 옮기게 되었으며, 우리 몸이 필요해서 주체적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TV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비주체적 구매를 강요받게 되었다. 상업언론의 핵심은 장사하는데 성공하면 된다는 것이다.

자본의 시대엔 자본가와 그들을 둘러싼 권력자들이 정보를 독점한다. 그리고 거기에 연결되어 있는 언론인들이 말을 생산하고 확산시킨다. 이른바 제도권 언론의 실체이다. 미디어가 가장 발달된 나라는 단연 미국이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한국이 2위이다. 모두 상업 미디어의 성장 때문이다. 제도권을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가상공간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인터넷 언론의 경우도 비슷한 성장과 발전경향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말에 대한 신뢰 문제다. 말을 생산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록 신뢰할 수 없는 무책임한 말들도 늘어나고 있다. 말초적 관심을 끌어 장사가 될 만한 얘깃거리가 있으면 공영방송이고 민간신문이고 닥치는 대로 우려먹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심지어는 자본과 권력의 이익에 금이 가는 일은 고의로 덮어버리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청와대 대변인 사건이 좋은 예이다.

장사가 될 만한 말들만 골라서 하고 무책임한 언어유희를 계속하는 대중상업 언론은 문명의 동력이란 애초의 목적을 상실한 지 오래다. 무수한 암투와 계산과 이해관계에 얽힌 그들에게 신뢰와 책임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다. 최근 히틀러의 나치를 방불케 하는 극우 인터넷언론이 쏟아낸 말들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게 꾸민 말이 아니고(信言不美), 아름답게 꾸며진 말은 신뢰할게 못된다(美言不信)”고 말한다. 대학언론은 꾸며진 말로 이루어진 상업언론이 아니라 믿음직한 말을 전달하기 위한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되었다. 학보라고 불리는 대학신문의 경우 1906년 미주리대학에서 처음 실습지로 창간되었고, 우리나라에선 1912년 숭실학당의 <숭대시보(崇大時報)>가 최초이다. 지금 전국 거의 모든 대학에서 주간, 격주간, 월간 등 다양한 형태로 발간되고 있다.

한국 대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으로 이루어진 대학언론은 상업언론의 대항마 역할을 하면서 대학민주화와 사회 정화제 역할을 수행해왔다. 신문만 보더라도 1980년대 초부터 대학신문은 총 매회 100만부 이상을 발간하며 급성장하였다. 일부 상업광고를 싣고 있기도 하지만 여전히 여론을 계도하고 대학문화를 창조하며 지역사회를 계몽하는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한국대학의 언론은 총장이 발행하고 주간 교수가 감독하는 비학생자치적인 모습을 지닌 점,

확고한 언론철학이나 독창성 부족으로 열독율이 낮은 점, 대학공동체 모두가 아닌 소수에 의해 제작되고 있는 점 등 한계가 있다.

몇몇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학언론은 상업언론과 다르게 믿음직한 말을 생산해내는 역할을 포기해선 안 된다. 사회정의의 구현과 대학문명의 창달을 선도하는 대한언론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학생들의 자발적인 실험정신과 끊임없는 노력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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