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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대학생과 사회정의
 용인춘추  | 2013·03·19 15:34 | HIT : 2,262 | VOTE : 538

신입생 입학과 재학생 등교로 학교가 사뭇 분주하다. 3월의 대학은 활기로 가득하다. 정밀한 장비로 측정한다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파가 캠퍼스 전체에 흘러넘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에너지의 원천은 학생들이며, 특히 신입생들로부터 분출한다. 그들의 당찬 발걸음, 맑은 눈빛, 진지한 의욕, 순수한 열정이 약동하는 봄의 생기와 어울리며 3월의 대학을 분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서너 달이 지나고 학기가 종료 될 즈음이면 기이하게도 대학의 에너지는 거의 느껴지지 않게 된다. 학우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눈빛은 흐리며 의욕은 사라지고 열정은 식어 있다. 간간이 몇몇 모범생들만이 방학계획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 원인은 대학생들에게 있지 않다. 그들을 무겁게 하고 흐리게 만드는 건 대학의 다른 구성원들 때문이다. 교수들일 수도 있고, 교직원들일 수도 있고, 학교 운영자들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복종만을 강요하는 사회일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사회는 주로 모든 것을 가진 소수 어른들의 놀이터이다. 이 어른들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을 조종하며 더 많이 가지려드는 데, 이것을 정당화하는 질서를 사회정의라고 부른다. 자기들이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빼앗길까 걱정되면 위기라고 하고, 문제라고 하고, 사회정의에 위배 된다고 말한다. 이 때 누군가 정의로운 사회는 다수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과감히 외치면 어떻게 되는가? 그들만의 리그에 덤비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기득권층 어른들은 위기의 조장세력이고, 골칫덩어리고,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공공연히 낙인을 찍고는 그들이 장악한 온갖 네트워크를 동원해 사회에서 몰아내버린다. 그리고 사회정의란 말로 포장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골칫덩이를 제거하며, 사회정의라는 말이 쳐준 거대한 장막 뒤에서 더 많은 이익을 챙긴다. 이러한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그저 어른들의 말씀에 공손히 순종하는 길밖에 없다. 대학도 이러한 어른들의 질서가 통용되는 작은 사회이다. 대학의 그 어른들은 모든 것을 가졌고 대학생들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존재이다. 대학이 대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이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사회인 것이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대학생이 내는 등록금에 의존하여 생존하는데, 그 돈의 대부분은 대학생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포장한 어른들을 위해 쓰인다. 대학사회 어른들은 경쟁과 생존과 미래지향이라는 말을 사회정의로 삼는다. 다수 대학생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 대학사회의 정의가 아니냐고 따지는 학생이 있다면 그는 문제학생으로 낙인이 찍힐 것이다. 이러한 대학에서 살아가려면 그저 어른들의 말씀에 공손히 순종하는 길밖에 없다. 바로 이 순종의 훈육이 불과 서너 달만에 당찬 발걸음, 맑은 눈빛, 진지한 의욕, 순수한 열정을 사라지게 만드는 실체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정의개념을 바꾸면 된다. 다수의 이익을 보장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맞다.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가려고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그들의 정의는 바뀌지 않는다. 그들은 많은 것을 함께 나누지 않는다. 철저히 계산된, 그리고 낙인효과로 생긴 여분의 이익을 조금씩 흘려줌으로써 진정한 사회정의를 따지는 자들의 투쟁의지를 미리 꺾어버린다. 온정이란 말로 포장된 이 조그만 당근이 비겁한 타협을 부르고 순종을 키운다. 대학생들 대다수가 타협의 길을 걷는 순간 캠퍼스에 넘쳤던 에너지는 더 이상 생동하지 않게 될 것이다. 대학의 역사는 새로운 사회정의를 만들어온 역사였다. 대학생의 당참과 맑음과 진지함과 순수함이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고 상상력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의 주인은 대학생 자신임을 잊지 말고 학기 초의 생기를 끝까지 유지하는 한 학기가 되기를 바란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회의하라. 듣지만 말고 만들어라. 좋은 강의는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 만드는 것이며, 좋은 대학은 학교의 어른들이 아니라 대학생 자신들이 만드는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대학생의 사회정의는 순종의 훈육에 대한 저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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