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0 (Fri) 03:20    
 
홈 > 칼럼/오피니언 > 부아칼럼

TOTAL ARTICLE : 81, TOTAL PAGE : 1 / 5
[460]4월의 노래
 용인춘추  | 2014·04·21 23:15 | HIT : 2,755 | VOTE : 382

봄은 단번에 오지 않는다. 지리한 꽃샘추위를 고스란히 겪고야 온다. 3, 4월 동안 마치 노란 병아리 색을 연상케 하는 부드러운 봄빛과 옷깃을 단단히 여미게 하는 독수리 발톱 같이 날카로운 칼바람이 여러 번 번갈아 온다. 그래서 봄을 기다리는 마음에 한창 조바심이 날 즈음 어느새, 천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화들짝 놀라게 된다. 4월의 용인 교정은 그야말로 벚꽃 동산이다.

3월을 뜻하는 March는 화성을 뜻하는 Mars가 변형된 것으로, Mars는 로마 시대에 전쟁의 신 이름이었다. 겨울의 끝자락이자 봄의 시작인 3월이, 마치 전쟁을 치르듯 치열하다는 의미일까? 또한 4월의 어원은 열리다(open)” 라는 의미의 라틴어, “aperire” 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4월이 되면 겨울 내내 얼었던 대지가 식물들에게 숨구멍을 열어주어, 꽃과 풀이 솟아나고, 나뭇가지에서는 연초록색 생명들이 눈을 뜬다.

가곡 ‘4월의 노래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라는 노랫말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견인하는 4월을 노래한다. 이 노래에 등장하는 목련은 추위가 덜 지나갔을 때 다른 꽃들보다 비교적 먼저 핀다. 찬바람 맞으며 피어나서 인지, 나는 이 꽃에서 화려함 보다는 왠지 고독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순수한 흰색이 유난히 크고 소담스러워 외롭던 날들을 보상 받는다. 목련은 강단 있는 모습으로 자신의 내적 질서를 보여준다.

꽃나무는 아니지만, 보도블록 틈새나 길 가장자리에서 피어난, 손톱이나 밥풀만큼 작고 귀여운, 이름도 알 수없는, 노랗고 하얀 꽃들도 눈에 띤다. 이들은 누군가가 애써 심은 것도 아니고, 피어난 후에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는 찬사를 받는 것도 아니다. 저절로 그 자리에서 생겨나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스스로의 터전을 만들어 간다. 이들이 햇살을 듬뿍 받으려고 고개를 내민 모습은, 저마다의 생명의 소임을 다 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봄이 왔음을 가장 먼저 알려주는 부지런한 꽃 중에 개나리를 들 수 있다. 꽃샘추위의 쌀쌀함이 채 가시지 않을 때, 수 십 개의 가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어느 한 순간 온산을 덮을라치면, 마치 누군가가 그 산을 큰 붓으로 한번 쓱쓱 칠하고 지나간 것 같다. 순수한 우리나라의 꽃인 개나리의 색은 그냥 노랑이 아니라, 색동옷에서 보는 바로 그 샛노랑이다. 그래서 더욱 더 정답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어느 해 봄날 사랑하는 사람이 병석에 누워 있었을 때 희망을 주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그때 개나리가 내 눈에 들어 왔다. 몇 가지만 꺾어 병에 꽃아 두기만 해도 그 따뜻함에 위로 받고 희망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그 꽃을 보고 행복해하던 그 분이 아기처럼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꽃말을 찾아보니 희망이란다.

한겨울의 혹한과, 봄의 문턱에서의 꽃샘추위와, 외로움을 모두 견디어낸 꽃들이기에, 그들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 계절을 대견해한다. 그래서 나는 계절의 여왕이라는 화려한 5월보다도 4월을 더욱 애틋한 애정의 눈으로 보게 된다.

오늘은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봄비가 촉촉하게 내렸다. 공룡 같은 건물숲 아래, 잿빛 거리위로, 연분홍빛 작은 벚꽃 이파리들이 점점이 떨어져 꽃길을 만들었다. 가지마다 풍성하게 피어난 벚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히 행복했었는데, 벚꽃나무 인생에서의 가장 화려했던 며칠이 이제 곧 막을 내리려나보다 생각하니, 그 덧없음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머잖아 굵은 비가 한차례 내리거나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어온다면, 속절없이 꽃이 질 것이다. 지는 꽃을 바라볼 때 나는 삶에 대한 겸손을 배우게 된다.

봄이면 생각나는 시 중에서, 영국의 낭만파 시인인 셸리(Shelley) 서풍에 부치는 노래(Ode to the West Wind) 가 있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다 할 수 있으랴?”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이다. 꽁꽁 얼었던 땅에서도, 봄이 오면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희망이 솟아나는 것처럼. 힘든 시간 속에서 꿈과 희망이 잉태되는 것이다. 겨울의 시련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추위는 오히려 희망의 귀환을 약속하는 것이다. 수없이 스쳐갔을 찬바람을 맞고 의연하게 서있는 저 나무들에게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이렇듯, 봄은 우리 삶에서 참으로 귀한 메타포가 된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Paul Valley)의 시구를 떠올려 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