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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이방인-알베르 카뮈』
 용인춘추  | 2014·06·02 20:52 | HIT : 1,911 | VOTE : 228

이방인-알베르 카뮈

중앙도서관 도쟁이 1

경영학과 안혜원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갈 즈음이었다. 그 때의 첫 감상은,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였다. 어째서 이야기의 주인공인 뫼르소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감상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죽음에는 별다른 감흥도 없이 수용하고, 장례를 마친 바로 다음 날 해수욕장을 가는가 하면, 그곳에서 만난 과거 여직원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무덤덤함이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솔직히 말하자면 학원 선생님이 내주신 책읽기 숙제였기 때문에, 또한 읽었는지 확인하는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반 강제적으로 읽었던, 적어도 나에게는 한때 지나가던 책으로 잊어버렸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가 이 책을 다시 고르게 된 것은 내가 이 책에서 13살 때와 21살 때 느끼는 감정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이것을 읽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의 놀라움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라는 것이 그 감상이다. 여전히 뫼르소는 무덤덤하고, 무기력해보이며, 삶의 어느 것에도 감흥이 없어 보인다. 그 무기력은 살인 후에도 계속되고, 자신이 결국은 죽게 될 때까지 이어진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무덤덤함은 어쩌면 굉장한 슬픔 속에서 나온 반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혹자는 상실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최초의 반응이자 정당한 반응이 무기력과 상실감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살인하는데도 무관심한데다 본인의 죽음에도 무관심한 것은 이것이 단순히 슬픔에서 오는 무기력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해준다. 게다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형선고 뒤에 신부와의 면담을 거부하며 우리는 결국 모두 죽을 운명이라고 소리치는 장면은 정말이지 이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열정이나 미련이 없구나 하는 확신이 든다. 더군다나 그가 단두대 앞에 섰을 때, 구경꾼들이 그에게 증오의 함성을 질러주길 바라는 것은 도대체 그가 무슨 생각으로 삶을 살아왔는지 더욱 더 알 수 없게 만든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 뿐 아니라 슬픔을 제외한 자신의 모든 삶, 그 예로 결혼과 살인, 게다가 자신의 죽음에까지도 그러한 무기력감을 느낀다는 것은 뫼르소가 이 세상 사람의 말과 행동, 더 나아가 삶 자체가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이는 이 책의 작가인 알베르 카뮈의 생각이 묻어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뫼르소는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세계에서 이방인처럼 낯설어하며 늘 구경꾼과 같은 무심함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타인의 행동과 말을 관조한다. 이런 무심함은 아랍 인이 꺼낸 단도에 반사된 햇빛이 눈을 찌르자 그에게 총알을 퍼붓는 것으로 이어진다. 검사는 살인 재판에서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 때 보인 태도와 그 후의 행적을 들어 비도덕적인 인간이라 비난을 하고 사형까지도 구형하는데, 그 비난의 진짜 이유는 이러한 무심함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이 세계와 그들의 삶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뫼르소가 증오를 받게 되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지막에서 구경꾼들이 그에게 증오의 함성을 질러 주기를 바란 것 역시 이러한 그의 신념에 대한 증거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많은 사람들의 증오 속에서 뫼르소는 스스로 타인은 그러한 무관심으로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은 이방인처럼 이 삶을 살아왔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어렸던 나이에도 소름끼치고 어이가 없었던 것은, 그의 무심함이 나의 삶마저 부정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느낌은 여전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결국 알베르 카뮈가 생각하는 삶은 무의미하다라는 책의 메시지에 동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을 굳이 그렇게 무심하게 살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한 번 살 것이라면, 아무리 언젠가는 죽어 없어질 삶이라도 열심히 사는 것이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책의 제목이 이방인인 것은, 작가 역시 무심함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으며, 그들이 마치 다른 곳에서 온 것처럼 알게 모르게 배척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분명 어딘가에는 뫼르소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나 혹은 내 주변 사람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은, 내가 이 삶을 그래도 의미 있게 보내고자 하는, 그러니까 이방인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