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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무관심 속에서 자라난 한 생명의 끊임없는 집착 <1F/B1, 바질>
 용인춘추  | 2014·04·12 22:19 | HIT : 2,734 | VOTE : 344

김중혁 작가의 소설 <1F/B1>은 시기별로 그가 단편으로 올린 글들을 묶어서 나온 책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대상들은 모두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스케이트보드, 냇가, 바질, 식탁과 담배, 일층과 지하 일층 사이의 공간, 유리, 마술.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지나쳐 온 평범한 물건들을 김중혁 작가는 그들 하나하나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글을 완성시켰다. 그 중에서 바질에 대한 글을 이야기 하려 한다. 바질. 김중혁 작가는 이 식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글을 썼을까?

이별했다. 박상훈과 지윤서는 이별했다. 이별이라는 물리적, 실체적인 단어가 박상훈을 아프게 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팠다. 지윤서는 박상훈과 헤어지고 난 후 곧바로 뉴질랜드로 해외출장을 떠났다. 비행기 안에서 그녀 역시 이별에 대해 생각했다. 분명 자신이 먼저 꺼낸 이별인데 다른 사람이 말해 준 것 같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지윤서는 근처 꽃시장에 들렀다. 거기서 그녀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할머니를 보았다. 바질을 팔고 있었다. 지윤서는 바질봉투를 집어 들었다. 할머니는 그 바질은 아무 때나 심어도 되며, 잘 자란다고 하였다. 하지만 지윤서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바질이 얼마나 키우기 힘든 허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따뜻하고 환기가 잘되는 환경에서 물 조절 또한 잘해야 했다. 바질을 키워 본 경험이 있었지만 매번 시들시들하게 죽었다. 그녀는 바질봉투 하나를 사 호텔로 돌아왔다.

박상훈은 매번 퇴근길에 지윤서의 집을 지났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긴 했지만 이별을 했다고 해서 늘 다니던 퇴근길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우연히 지나다 지윤서를 한번쯤 마주치고 싶기도 하였다. 집 앞을 지나면서 멀끔히 그 곳을 쳐다보았다. 집 뒤엔 야산이 하나 있었다.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뜬금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윤서는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자연이라 생각했다. 야산은 가시덤불과 덩굴, 누군가 몰래 갖다 버린 쓰레기뿐이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지윤서는 짐도 풀지 않은 채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깬 그녀는 문득 자신은 이제 혼자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녀는 가슴에서 뭔가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다. 그것을 터트려야 할지 그대로 둘지 알 수 없었다. 버릇처럼 울고 싶지는 않았다. 감정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던 중 바질봉투를 발견했다. 출근 전 그녀는 야산에서 흙을 퍼와 화분에 옮겨 담고 바질 씨앗 열개를 골고루 넣었다. 물을 주고 창틀에 화분을 놓았다. 사흘 후, 바질 싹이 올라왔다. 보통 바질의 싹은 연두색이지만 이것은 검붉은 색이었다. 평범한 바질이 아닌 건 분명하다고 지윤서는 생각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땐 바질의 엄청난 향이 온 집안에 퍼졌다. 향기롭긴 했지만 너무 강력해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윤서는 회사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야근하는 날도 많고 집에 오면 쓰러져 자고 일어나 옷만 갈아입고 출근했다. 그런 일상이 계속되던 어느 날 지윤서는 문득 바질이 생각났다. 역시 바질은 시들고 말았다. 뿌리의 흔적도 없어진 채 흙은 까맣게 변해 있었다. 창문틀에 화분을 두드려 흙들을 털어냈다. 그녀는 다시는 식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젠 책임지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가 된 그녀는 아무것도 책임질 일이 없었다. 박상훈은 매일 지윤서의 집 앞을 지났다.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이상한 냄새가 났고, 집 뒤 덤불이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이 계속 된 어느 날 아침 박상훈은 집 뒤 야산을 확인했다. 그곳은 덤불로 꽉 차 있었다. 덤불의 양은 엄청났고 위협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구청에 전화해 담당자를 불렀다. 담당자 차우영이 그곳으로 왔다. 두 사람은 덤불을 꼼꼼히 살폈다. 어디에도 빈틈이 없었다. 차우영은 덤불을 칼로 내리칠 때 마다 풀냄새가 짙게 퍼졌다. 박상훈은 바질 향과 비슷하지만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뒤에서 박상훈을 불렀다. 지윤서의 회사 동료였다. 며칠 째 지윤서와 연락이 안 돼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박상훈은 서둘러 지윤서의 집으로 들어갔다. 지윤서는 없었다. 불길한 예감에 박상훈과 차우영은 미친 듯이 덤불을 헤집고 파고 들어갔다. 가까스로 그 끝에 다다랐을 때 그곳엔 작은 공원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몸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지윤서가 쓰러져 있고 엄청난 괴식물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괴식물들은 지윤서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박상훈과 차우영은 쓰러져있는 지윤서를 들쳐 엎었다. 박상훈은 일어서면서 덩굴을 향해 정확히 칼을 휘둘렀다. 줄기가 두 동강이 나고 이파리가 흔들리면서 코로 바질 향이 훅 풍겼다.

박지영 기자

(chunchoo@nate.com)